시편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서론: 이 시는 고라자손의 시이며 성전의 예배를 사모하는 ‘시온 시’로 분류됩니다.
본 시를 바벨론 포로 당시 한 고라 자손이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된 슬픔과 나라를 잃은 절망을 시로 표현한 것으로 보는 입장과 다윗이 압살롬의 공격을 피하기 위하여 시온을 떠나 이리저리 피신 하던 중 시온 성막을 그리워 하면서 다윗이 지은 시를 포로로 끌려간 고라 자신들이 자신들의 심경을 표현하기 위해 불렀기 때문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절망 중에서도 하나님을 갈망하며 이를 극복해 가는 시인의 모습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합당한 삶의 지침과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 사슴이 시냇물 찾기에 갈급함같이
먼저 시냇물을 찾아 헤메는 사슴의 모습, 영혼의 갈급함을 토로하는 시인의 호소는 그가 지금 절박하고 고통스런 상황에 처해 있음을 확인시켜 줍니다.
본래 사슴은 열이 많은 동물이기에 물을 자주 먹음으로써 열을 식힙니다. 사슴은 갈급함을 해결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물을 찾아 헤메게 됩니다. 시인은 지금의 자신의 처지를 오랜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물을 찾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물을 얻지 못한 사슴의 모습에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2, 믿음을 찾기에 갈급해야 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내 속에서’ 낙심하며 불안해하고 있니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한 마디로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다른 기독교인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내가 갖고 있지 않은 믿음을 저 사람은 가지고 있구나, 다른 성도들은 내가 전혀 소유하지 못한 것을 소유하며 즐기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나는 어째서 거기에 도달할 수 없지?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찾으려고 애써 보지만, 안되는 것을 알 때에 그들은 낙망하고 혼란스러워하며 불안해합니다. 영적인 침체가 오면 불평, 불만이 옵니다. 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요한 웨슬레가 경건한 집에서 신앙생활을 했고 믿음에 대한 부분에서는 부족함이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1738년까지는 믿음만으로 의롭다함을 얻어 구원받는다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어느 의미에서 성경의 가르침을 지식적으로는 완전히 동의 하였습니다.
웨슬레가 이 중요한 교리를 참으로 이해하게 된 것은 모라비언 형제를 만난 것과 런던에서 옥스퍼드로 가는 도중에 ‘피터 뵈홀러’라는 사람과 특별한 대화를 나누었던 결과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3,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불안해하는가?
본 절은 영적 침체에 빠진 시인이 스스로에 대한 자문함과 동시에 침체에 대한 처방을 제시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낙심 중에도 하나님을 바라면서 믿음을 새롭게 하는 시인의 성숙한 신앙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도 절망스러운 문제를 만나면 낙심하며 실망하며 불안해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영적 침체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모든 염려, 불안, 외로움이 우리의 믿음의 연약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이 시인의 고백은 너무도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유일하고도 영원한 생수라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사망에 처해질 수밖에 없는 모든 인류에게도 유일한 구원의 생수가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만남으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요한 웨슬리는 대서양 항해 도중에 폭풍우를 만났는데 배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을 때, 배 한구석의 모라비언 성도들이 태연자약하게 찬미하고 예배드리는 것을 보고 크게 감동하였습니다. ‘어떻게 저들은 내가 갖지 못한 내적 평화와 위로를 지녔을까?’ 하며 의아해 했습니다. 그는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사모했습니다. 1738년 5월 어느 수요일 저녁, 런던 올더스게잇의 작은 집회에 참석했다가 그는 전 심령이 죄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과 구원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 이듬해인 프리스톨에서 처음 야외설교를 하여 대성공을 이루고 후에 감리교를 창설하였습니다.
결론: 자신을 아는 것이 은혜입니다.
자신의 영적 상태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시인이 고백하는 영적 침체에 대해 별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도 이 문제에 대해서 자유 할 수 없습니다.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불안해하고 낙심하며 불평, 불만이 나오지 않으면 대단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타는 목마름의 갈증을 느껴야 합니다. 다니엘의 사자굴 앞에서 우리가 다니엘의 입장이라면 여러 형태의 믿음이 나올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믿음이 있을 수 있고 실망시킬 수 있는 믿음도 있을 것입니다. 믿음의 성숙을 통해 우리의 전 심령이 죄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과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