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7: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메어 죽은지라.”
서론: 사람이 어려운 일을 당하면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특히 억울한 일을 당하면 괴로워하며 자살도 생각하게 됩니다. 심한 우울증을 가진 사람도 자살을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사회에서는 자살을 합당하다고 보지는 않지만 자살 옹호론 자들은 사람이 자기 생명을 유지해 나갈 고유한 권한이 있듯이 자기 생명을 포기할 권리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이러한 자살 옹호론을 단호히 반대합니다. 물론 성경은 그 어디에서도 옳다. 그르다에 관해 직접 언급하는 부분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교훈 들을 종합해 보면 자살을 반대하고 죄악시 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가룟 유다의 자살이 왜 죄가 되는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합니다(창 1:27). 인간의 생명뿐이 아니고 모든 생물의 생명이 하나님께로 부터 왔다고 가르치며, 하나님의 지극히 세심한 보살핌 속에서 낳고, 죽는다고 가르칩니다(마 6:30). 그러나 인간의 생명이란 두말할 나위 없이 귀한 것입니다(마 10:29-31). 더욱이 성도의 생명은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되었습니다(벧전 1:18-19).
즉 성도의 몸은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산 것입니다(고전 6:19-20). 그래서 바울은 성도의 몸을 ‘주의 것“으로 규정했으며 나아가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죽을 목숨으로 말합니다(롬 14:7-8). 따라서 성도가 자살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아무리 극한 상황에서도 자살은 물론이거니와 자해도 해서는 안됩니다. 성도는 자신의 몸을 거룩하고 단정히 가꾸며 의의 병기로 쓰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해야 합니다.
2, 회개라는 새 삶의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게 자살의 동기는 가룟 유다와 같은 경우와 같을 때가 많습니다. 즉 씻지 못할 죄를 범하고 양심의 고통을 이기지 못할 때 사람들은 자살을 유혹받습니다. 스스로 자신이 행한 행위를 정죄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연약하여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롬3:23). 억울한 일을 당하면 견디기 힘듭니다.
가룟 유다도 예수님을 팔았지만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을 바라고 회개하였더라면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까요? 다만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습니다(마12:31-32). “성령을 모독하는 것과 성령을 거역하는 것은,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심지어 저주까지 하였습니다(마 26:70, 72, 74).
그런데도 그는 예수님의 수제자로 사도직을 끝까지 수행했습니다(벧전 5:1). 이것은 바로 그가 자신의 죄를 눈물로 뜨겁게 회개했기 때문입니다(마 26:75).
우리에게는 “회개”라는 새 삶의 통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중한 죄를 지었어도 자신의 생명을 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께는 살인자도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눅23:39-43).
훼방자, 핍박자, 포행자, 죄인의 괴수라도 용납됩니다(딤전1:13-15). 어떠한 죄라도 주님께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그 죄는 흰 눈같이 양털같이 깨끗해집니다(사 1:18). 그런데도 만일 자살한다면 그리스도의 속죄를 헛되게 하고 모욕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고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시며 특별한 소유로 삼으시고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죄사함 받을 수 있는 길을 만드셨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 회개하고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시고 죄를 동에서 서가 먼 것 같이 우리 죄를 기억하지도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생명을 포기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된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삶의 여건들이 어렵고 험난할지라도 우리의 삶의 자리를 굳게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주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결론: 이 세상에 살다 보면 남부끄러운 치명적인 죄도 짓게 되며, 전 생애를 다 살아내기 어렵도록 극한 난관에 부딪칠 수도 있고, 삶이 저주스럽고 낙심될 때도 있습니다. 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두번 이상 경험할 수 있는 극히 보편적인 일입니다. 따라서 만일 그때마다 모두들 삶을 포기한다면 이 세상에 살아남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삶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엄한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삶 속에서 우리가 이룩해야 할 사명을 주셨고 삶을 살아낼 수 있는 갖가지 은혜와 은총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을 중도에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마지못해 살아서도 안 됩니다.
성도는 주님의 뜻을 이루며 즐겁고 활기차게 살아야 합니다(약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