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요 14;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 15:1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미 “옛사람은 죽었고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1,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증거로서 계명 준수에 관해 언급하신 말씀입니다. 주를 사랑한다고 하루에 수십 번씩 말하는 사람이라 하여 참으로 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며, 저명한 신학자나 성경학자라 하여 혹은 교계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인물이라 하여 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 대한 사랑을 증명해 보이는 방법은 그분이 주신 계명들을 지키는 것입니다.

구약을 통해서 은혜를 받은 사람은 복음으로 자신을 적용하여 자유함을 느낄 필요가 있으며 신약의 복음으로 은혜를 받은 사람은 구약의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홀로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고전 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2, 예수님께서 주신 계명들에 순종해야 합니다.

‘지키는 자’로 번역된 ‘테론’은 ‘계속해서 준행하다’ ‘계속해서 유의하다’란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계명들에 대해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순종함으로 따르는 것뿐입니다.

예수님의 참 제자 인가의 여부는 그의 계명 준수 여부로 판가름 납니다.

요한일서에서도“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니라” 십자가를 통해 주어지는 평안이 진정한 평안입니다.

3,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믿음은 거짓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명령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을 ‘아는 것’ ‘의지하는 것’ ‘따르는 것’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약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7절에 “이와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하나님을 믿으며 진리에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고자 하면 믿음이 없느니 율법주의자니 하는 진리를 벗어난 사람들이 있는데 참으로 그 영혼이 불쌍합니다.

결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은혜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있는 자’입니다. 누구든지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예수님을 만나면 그 분 안에 있는 아버지의 영광을 보게 되고 그 앞에 엎드려 ‘나의 주’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에게는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신적인 영광과 위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와 진리는 하나님의 본질적 특성으로 예수 안에 이것이 충만하였다는 것은 인간 예수께서 신적 본질을 지녔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대표하는 은혜와 진리는 무엇인가?

첫째, ‘은혜’에 해당하는 ‘카리스’는 두 가지 근본적인 개념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우아함이나 매력을 가리키는 ‘미’에 대한 개념이고 다른 하나는 전혀 받기에 부족한 자에게 주어지는 분에 넘치는 ‘은혜’(선물)이라는 개념입니다.

둘째, ‘진리’에 해당하는 ‘알레데이아’는 사상과 행위의 진실성이라든지 겉모양뿐인 것에 반대되는 실재를 가리키는 의미로 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가리켜 ‘진리’라고 하셨으며,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보내실 성령 또한 ‘진리의 영’이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삶은 어렵고 인간이 감당할 수 없기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을 따라 살아야 감당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란 ‘멸시의 장소’ ‘조롱의 장소’ ‘죽음의 장소’ ‘밟히는 장소’입니다.